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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아멜리아's senselix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전쟁에 무감각해지는 그들,리뷰

by A아멜리아 2024. 1. 1.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정말 군인들은 정신적으로 이상 없었는가?

2022년 개봉한 반전 영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1930년판과 1979년 TV판에 이은 영화화된 세 번째 작품이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 다니엘 브륄, 알브레히트 슈흐 출현

 

 

네, 저희는 전쟁 종료 시각까지 끝까지 싸워야합니다.

Roger that. We will fight until the war is finished.

 

독일이 시작한 1차 세계 대전과 3년 후, 프랑스군과의 전쟁으로 또다시 끝없이 폭탄과 총에 죽어가는 독일 청년들. 하지만 어떠한 전쟁 경험도 겪어보지 못한 독일 청년들은 전쟁터로 나가 국가를 위하여 싸우기에 목말라 있다. 과연 독일을 위한 전쟁인 것인가? 이는 나치의 강력한 사상 전파와 그들만의 이기적인 경제, 정치적 목적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름답게 포장하여 독일 청년들을 매혹시킨 터이다.

 

1971년 봄, 주인공 파울 보이머와 그의 친구들 루트비히, 프란츠, 알베르트 크로프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만 17세의 나이로 독일 나치 군대로 입대한다. 그들이 향한 곳은 프랑스와 국겨을 맞대고 있는 독일의 서부 전선. 끝없이 이어지는 폭격 속에 독일은 몇 주 만에 사상자가 4만 명에 이르르지만, 미디어 발달이 지금과는 달랐던 시대에 경험 없는 독일 청년들은 국가의 전쟁 승리를 바라며 열정적으로 전쟁터로 나간다. 파울은 전쟁터에서 죽은 한 청년, 하인리히의 옷을 입고 전쟁터로 가게 된다. 파울을 비롯한 젊은 청년들은 실제 전쟁터에서 느낄 수 있는 전대미문 비인간적인 행태의 만연과 자신들이 상상했던 명예로운 곳이 아님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군대 수장들은 젊은 군인들에게 끝없이 돌격하라는 명령만 할 뿐, 적인지 내 편인지 구분도 되지 못할 정도로 정신 없는 전쟁터에서 독일 청년들은 속수무책으로 폭탄과 총 공격에 쓰러져 전쟁터는 순식간에 시체터로 변해간다.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도와가며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과는 다르게 비인간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적군의 목숨을 먼저 끊어놓아야만 하는 전쟁터에서 파울은 전쟁의 룰을 배워간다. 바로 '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 보존이 중요한 전쟁터 안에서 파울은 점점 전쟁의 두려움에 무감각해져간다. 그저 상부의 명령에 적을 죽이러 달려나가고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죽어가는 동료들의 모습도 익숙해져간다.

 

1918년 11월 11일, 빌헬름 2세는 퇴위하고 혁명세력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세우고, 휴전협정 조인을 하라고 예르츠베르거에서 지시하면서 전쟁은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6시간 후인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부터 휴전 효력을 발휘 안을 프랑스와의 협정을 통해 발휘하였고, 전쟁은 사실상 끝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파울이 소속한 부대의 지휘관은 오전 11시까지 점령 지역을 늘리기 위해 정신 나간 행태를 보이며 또다시 돌격 명령을 하고, 전쟁에 대한 완전한 무감각한 표정으로 파울은 달려나간다.

 

 

누구를 위한 전쟁입니까?

영화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직접 참전한 경험을 바탕을 토대로 1929년 발간한 소설이 원작으로 1930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됐던 영화가 2022년 독일에서 다시 나왔다. 영화의 바탕이 되었던 서부 전선에서의 전쟁은 전선의 이동은 거의 없었던 아주 참혹하고 공허한 전쟁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간의 협약이 맺어지기 전까지, 전쟁터에서 무기력하게 싸우던 폴은 영화가 끝에 다다를 때쯤 죽인 자신과 같은 적군의 품에서 자신의 직업인 인쇄공이라고 적힌 종이와 가족 사진을 발견하게 되면서, 적군 관계를 떠나 그도 한 사람을로써 이 전쟁을 자신과 같이 원해서 참전한 것이 아니었고, 전쟁이 끝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아무 악감정없는 사람에 악감정을 가지고 죽여야만 자신이 살 수 있기에, 전쟁이 가하는 비인간적인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탁상공론하는 상부와 국가 관료들 그 아래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고 가족을 떠나 앞에 보이는 적군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군인들. 국가 관료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이겠지만, 실상은 몇 백 미터를 조금 더 점령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심에 기반한 전략이었음을. 영화 끝에 협정이 체결되는 오전 11시가 되기까지 겨우 얼마 남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겨우 몇 백 미터 더 점령하겠다고 명령하는 상부 아래 적군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폴의 마지막 표정에서 읽혀진 무기력함과 비참함 그리고 전쟁에 대해 무감각해져가는 동료들의 움직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현재 진행형, 세계 전쟁

현 21세기에도 세계 전쟁은 진행 중이다. 실질적인 전쟁 형태를 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외교/정치적인 행태의 전쟁인 미국과 중국. 한국에 무역 제재 위협을 가하고 있는 러시아 푸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아무 의미 없이 전쟁에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죽음은 거리낌 없이 뉴스로 그 소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외교/정치적인 행태의 무역 전쟁은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야기하고 곡물 가격 상승,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그것을 기회로 재밌는 공략을 선사하고 있는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까지. 

 

자본주의 세계 국가 이념 아래,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전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꼭 자본주의 아래 행해진 것은 아니다. 수렵 사회, 청동기 시대에서도 각 민족과 집단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지금까지 그 토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위를 점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일상속에서도 비즈니스 관계, 동료 관계, 친구 관계에서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하지만 참담했던 역사적 경험과 교육을 통해 인간은 끊임 없이 발전 해왔고, 전쟁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어디까지 무너져갈 수 있는지 배웠다. 현 시대에 전쟁 중재의 힘을 가진 국가는 이를 중재하기 위한 민주적인 노력을 가하고, 사람들이 전쟁 종식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로 퍼져나가는 그들의 목소리의 힘을 믿어 보고자 한다. 

 

현재 내가 살 고 있는 영국에는 나라를 잃고 이민 온 홍콩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가가 아닌 공산당을 지지하는 중국 청년들을 나무랄 순 없지만 현대에 쓰이고 있는 지금 역사가 후에 어떻게 해석될지는 그들도 나이 들고 직접 공부해 보길 바란다.